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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40896, 노르망디의 미군묘지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광화문 아리랑'. 6월30일까지 전시된다. 조성관 작가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서울 광화문광장에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설치된 대형 조각품 '광화문 아리랑'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광화문 아리랑'은 설치미술가 강익중의 작품이다. 달 항아리는 70초마다 한 바퀴를 돌아 맞물린다. 제목의 아리랑이 시사하듯 경기아리랑?밀양아리랑?정선아리랑?진도아리랑의 가사를 가로세로 30cm 패널에 한 글자씩 채웠다. 패널과 패널을 잇는 틈 사이에는 전사자 17만5801명의 이름이 깨알처럼 적혀 있다. 한국인은 한글, 외국인은 영어로 표기했다. 달 항아리 표면에는 한국과 유엔 참전 22개국 어린이들로부터 모은 '꿈' 그림 패널을 붙였다.

6·25전쟁 중 UN 회원국으로 군대를 파견한 국가는 모두 16개국. 17만5801명은, 민간인 사망자를 제외한 군인 전사자다. 이 중에서 유엔군 전사자는 4만896명이다.

캐나다 오타와 중심가 전쟁기념관에는 한국전쟁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오래전 이곳을 찾았을 때 살펴본 자료 중에서 지금까지 기억에 선명한 것은 빛바랜 신문 기사였다. 캐나다에서 발행된 1950년 6월26일자 신문 1면 오른쪽 귀퉁이에는 1단 제목으로 'Communists Invaded S. Korea'(남한을 침공한 공산주의자들)라는 기사가 실렸다. 나는 이 단신 기사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패널 사이에 새겨진 625전쟁 전사자 17만5801명의 이름. 조성관 작가


미국, 캐나다,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를 비롯한 자유세계의 청년들은 대부분 '사우스 코리아'(남한)를 알지 못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을 받았구나! 이 뉴스를 접하고 청년들은 '사우스 코리아'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기꺼이 참전을 자원했다. 이들 중 4만896명이 한반도 산하에서 산화(散華)했고, 그중 미군이 3만6492명이었다.

부산 남구 대연동에는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UN기념공원이 있다. UN기념공원은 UN 관할이다. 1955년 한국 정부는 UN에 대한 보답으로 묘지 3만2000㎡를 UN에 기증했다. UN기념공원에는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남아공 등 참전 11개국 전사자 2300명이 안장되어 있다. 나는 이곳과 얽힌 이야기를 기자 시절 두 번 기사로 다룬 적이 있다.

그런데, UN기념공원에는 미군 전사자 3만6492명의 묘가 없다. 대신 3만6492명의 소속부대와 계급과 이름을 오석(烏石) 벽면에 새겨놓았을 뿐이다. 왜일까?

미군 전사자들의 유해는 모두 본국으로 송환해 희생자들의 고향 마을 공동묘지에 안장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인은 자식이 전쟁에 나갔다가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오는 '홈커밍'(homecoming)을 최고의 경사이자 영예로 여긴다. 중년층은 영화 '디어 헌터'에서 주인공 마이클의 귀향을 환영하는 현수막을 기억할 것이다. 펜실베이니아의 한적한 시골 마을의 잿빛 하늘 아래 걸려있던 쓸쓸한 현수막!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군은 한국전쟁 중 실종된 미군 병사의 유해를 고향 땅에 가져가기 위해 한반도 어딘가에서 발굴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노르망디의 '콜빌 쉬르 메르' 위치. 구글지도 캡처


노르망디의 89만평 미군묘지 

프랑스 북서쪽 노르망디는 사계절 날씨가 좋아 유명 휴양지가 몰려 있는 곳이다. 영화 '남과 여'의 주요 배경인 도빌이 바로 노르망디 지역에 있다. 파리에서 두 시간 거리인 도빌은 프랑스와 영국의 상류층들이 휴양지로 선호한다.

도빌에서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콜빌 쉬르 메르'(Colleville sur Mer)라는 작은 마을을 만난다. 이 마을에는 미국 영토가 있다. 프랑스에 왜 미국 땅이? '콜빌 쉬르 메르'에서 몇 분 걸어가면 영국해협이 보이는 바닷가가 나타난다. 오마하(Omaha) 해변이다. 이쯤 되면, 의문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그렇다. 1944년 6월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미군 보병 1파 부대가 상륙한 장소가 오마하 해변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비롯해 2차 세계대전을 다룬 미국 영화에서 D-day 장면은 모두 오마하 해변의 상륙 작전을 보여준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세계 전쟁사에서 전쟁의 판도를 바꾼 지상 최대의 작전으로 평가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2차 세계대전 종전이 2년 앞당겨졌다는 것이 전쟁사 연구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만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패했다면 나치 독일 지배가 최소 2년은 더 존속되었다는 이야기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미군 4414명이 전사했다. '세계인문여행'에서 다룬 적이 있는 종군 사진기자의 전설 로버트 카파(1913~1954)가 제1파(派) 부대를 종군해 기념비적인 사진을 남겼다. 로버트 카파가 찍은 사진 중에는 오마하 해변 근처에 사는 프랑스 농부들이 6월7일 해변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구경하는 장면도 있다.

6월은 한여름이다. 시체는 금방 부패하기 시작했다. 미군은 임시 묘지를 만들기로 한다. 6월8일, 묘지 전담 병참 부대가 오마하 해변 옆 들판에 4414명의 임시 묘지를 만들어 나무 십자가를 꽂았다. 프랑스 땅에 조성된 첫 미군묘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미국은 나라 밖에서 숨진 병사의 시신은 무조건 고향 마을로 귀향시켜 봉안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미국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전사자들이 프랑스 땅에 묻혀 있는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미국 정부가 전사자들의 유해를 본국으로 송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프랑스 정부가 묘수를 내놓았다.

'콜빌 쉬르 메르' 지역, 290만㎡(약 89만평)를 미국 정부에 영구 기증할 테니 이곳에 정식 미군 묘지로 조성해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냐? 그러면 이곳이 미국 땅이 되는 것이니 유해를 고향땅에 모신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한 유럽의 자유를 지키려 희생한 미군 전사자들을 기리는 데는 노르망디 현장보다 더 좋은 곳이 없지 않느냐.

 

 

 

 

'콜빌 쉬르 메르' 미군 묘지 전경. Bjarki Sigursveinsson이 2003년에 촬영한 사진이다.


미국 정부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미국 최고의 건축가, 조경사, 벽화가, 지도 전문가가 노르망디 미군묘지 조성에 머리를 맞댔다. 10년 이상의 작업 끝에 1956년 7월, 미 해군 제독 킨케이드와 프랑스 육군 대장 가네발이 참석한 가운데 헌정식이 거행되었다. 이렇게 되어 미국은 프랑스 땅에 무상으로 미군 묘지를 운영·관리하게 되었다. 노르망디 미군묘지 기념공원에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전사한 미군 4414명을 포함해 2차 세계대전과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전사한 9388명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 이 중 1명이 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에서 숨진 미군이다. 이곳에는 1년 365일 성조기가 휘날린다.

스필버그에 영감을 준 형제 전사자 

현재 노르망디 미군묘지 기념공원은 미국전쟁기념위원회(ABMC)에서 관리·운영한다. 매년 평균 100만명 이상이 이곳을 찾는다. 노르망디 미군묘지 기념공원은 미국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를 포함해 전 세계의 묘지 중 방문객이 가장 많은 곳이다.

이 미군묘지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두 아들 시어도어 루스벨트 2세와 퀸틴 루스벨트, 2차대전 중 전사한 레슬리 맥네어 육군대장 등이 영면하고 있다. 프레스톤 나일랜드와 로버트 나일랜드 형제 두 명도 이곳에 묻혔다. 두 형제의 스토리는 스필버그 감독에 영감을 주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탄생케 했다.

스필버그는 영화에서 도입부와 끝부분에 '콜빌 쉬르 메르 미군 묘지'를 등장시킨다. 영화의 라스트 신. 백발노인이 된 라이언 일병이 존 밀러 대위(톰 행크스 분)의 십자가 비석 앞에서 아내에게 묻는다. "여보, 내가 값진 삶을 살아왔겠지."

 

 

 

 

노르망디 상륙작전 1년 뒤의 미군묘지 모습. 위키피디아


20세기 전쟁사(史)는 문명과 야만의 결투였다. 공산주의와 나치즘과 군국주의가 야만의 칼을 휘둘렀다. 2차세계대전과 6·25전쟁이 바로 문명과 야만의 전쟁이었다. 미국은 문명 세계의 리더로 다른 나라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풍요는 유엔군 4만896명이 흘린 피 위에서 피어난 장미꽃이다. 뉴욕에 가는 사람은 9·11 기념관을 한 번쯤은 들르게 된다. 기념관에 걸려있는 로마의 시성(詩聖) 베르길리우스의 명구에 방문객들의 눈길이 오래 머문다.

"시간이 아무리 흐른다 해도, 어떤 더 큰 사건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와 후세(後世)는 영원토록 당신들을 잊지 않으리."

 

 

뉴스1 <뉴스커넥트>를 통해 제공받은 컨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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